본문 바로가기

(사)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시대를 넘어 고귀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회장 인사말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을
국민정신의 요람으로 만들겠습니다.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지난 10년간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를 이끌어 오신 김병수 회장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김병수 회장님의 재임기간동안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는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을 성공적으로 관리하는 등 지역사회의 통합에 기여함은 물론, 강택진 선생, 박태서 선생 등 후손이 없으신 독립운동가분들의 묘소를 관리하며 선열들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적은 3년 전 2016년에 “광복단약사”를 편찬하여 1913년에 결성된 대한광복단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가는 초석을 다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곳에 대한광복단 단원이셨던 홍현주 선생의 손자이신 홍의찬 대한광복단 유족회장님과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신 석주 이상룡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선생님께서 와계십니다. 저희들에게는 커다란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장욱현 시장님, 이중호 시의회의장님, 그 외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귀빈들, 영주시민들,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회원들 앞에서 저는 무슨 약속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 6월 10일은 1926년의 6·10만세사건이 일어났던 날이며 또 1987년의 6·10민중항쟁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날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저로서는 저의 심장이 이 벅찬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지난 100여년의 우리 민족 역사를 보자면 종적으로는 크게 두 개의 역사인식의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일제강점시기의 항일독립전쟁과 4·19혁명, 5·18의거, 6·10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자주와 민주의 역사인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친일을 옹호하고 독재를 합리화하는 흐름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빛을 보았던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 다시 말해 반민특위의 활동이 반년도 못 넘기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 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친일은 정의가 되었고 이어 나타난 군부독재는 이들의 걸맞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우리 민족에게 다가온 횡적인 역사적 사건, 즉 분단과 민족상잔이라는 운명까지 겹쳐져서 복잡하게 뒤얽히고 서로 적대적인 역사인식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에서 역사는 왜곡되고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일본의 역사의식 부재만을 탓할 것이 아닙니다.

최근의 약산 김원봉 선생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렇습니다. 비단 김원봉 선생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누구는 부당하게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느니, 누구는 친일파의 후손이라느니, 누구는 빨갱이라느니, 등등.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와 같은 항일독립운동 기념사업단체들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누가 역사의 피해자가 되었는가를 분석하며, 올바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용성을 갖고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영주시민들이 앞장서서 풀을 수 있는 문제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1913년에 채기중 선생, 유창순 선생, 유장렬 선생, 한훈 선생, 강병수 선생, 김병연 선생, 정만교 선생, 김상오 선생, 정운기 선생, 정진화 선생 등에 의해 풍기에서 결성된 대한광복단은 더 잘 알려진, 이후의 대한광복회의 모체였고 그런 의미에서 구한말 항일의병투쟁 이후 처음으로 봉건적 군주제를 극복하며 무장독립전쟁을 추구하는 단체였습니다. 1919년의 임시정부수립과 광복군 창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주요 지도자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은 광복단원들 중 많은 분들이 의열단과 광복군의 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광복군이 창립되는 초석이었던 것입니다. 풍기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이름도 대한광복단으로서 전 민족의 대표성을 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일과 독재의 군림 속에 우리는 긴 시간동안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기나긴 시간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1990년대 들어 영주에서는 광복단의 재조명이 가능하였고 역시 시민의 힘으로 광복단기념공원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민족의 위대한 시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세워지고 이어져 온 선비의 고장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타지에서 온 독립투쟁가들을 받아주고 지원하며 함께 투쟁하였던 대한광복단 당시의 영주의 포용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이런 자부심을 갖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야 제대로 시작된 대한광복단의 진정한 연구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때, 영주 특유의 포용성으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수용과 포용이 타협일 수는 없습니다. 친일을 포용할 수는 없습니다. 친일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포용될 수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거짓 사실을 주장하며 방해를 한다면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맞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기념사업회가 추구하는 영주의 선비정신이고 대한광복단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설립 30주년을 맞는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가 송지향 초대 회장님, 제2대 정지옥 회장님, 제3대 송종박 회장님, 제4대 박태서 회장님과 김병수 전 회장님의 지도 아래 영주 안에서 자리를 잡고 광복단의 의의 발굴과 소개의 기반을 다졌다면 앞으로는 대한광복단의 역사적 의의를 세상에 알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며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따끔한 지도편달을 지역의 어른들게 부탁드립니다.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회장 정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