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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단

시대를 넘어 고귀한 희생을 기억합니다.

1923년 종로경찰서폭파의거

1923년 종로경찰서폭탄투척의거

만주로 피해 의열단에 합류했던 대한광복단 창립단원 김상옥의사가 무기를 소지하고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기들의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다. 이후 10여 일을 신출귀몰하게 피신하며 1천여 왜경과 대치하여 그들을 전율케 하다 결국 자폭한다.

김상옥의사의 거사로 대한광복단의 활동 끝이 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한광복단의 단원들의 활동은 이어져 갔고 그 정신은 후속 무장단체들에 이어져 갔다.

독립전쟁사에 끼친 영향

광복단의 지도부가 체포되며 국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독립투사들이 있었다는 믿음이 국민 사이에 퍼져나갔고 이는 3·1혁명이라는 거대한 힘의 원동력이 되었다. 1919년 1월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한 39인 중 신채호, 김좌진 등 8인이 대한광복단 단원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밀양출신 황상규와 김대지 등은 1919년에 의열단을 창설하였으며, 독립군과 광복군 형성과정에도 대한광복단 출신이 많이 참가한다.